템빨_여행

20대의 여행엔 있지만, 30대의 여행엔 없는 3가지

가보자진짜로 2018. 5. 8. 12:33

20대의 여행 과 30대의 여행. 어떤 쪽이 더 옳다거나 어떤 쪽이 진화한, 혹은 상위의 여행 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, 강요할 수도 없다. 



모두의 20대가 그러하지 않고, 모두의 30대가 그러하지 않으니 편협한 단정은 금물 ! 그저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느낀 바를 기준으로 작성했다는 점을 기억해주시길 바란다.



타고나기를 내성적인 성격의 끝판왕으로 태어났던 나는 환경을 바꾸는 걸 무척이나 두려워했다. 낯가림은 늘 신생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, 낯선 사람과 말 섞는 것이 두려워 어떻게든 시선을 피하고, 입을 꾹 다물곤 했다. 


새학기가 되고, 새 학년에 올라가면 새로운 반에서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하고, 처음 보는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 것이 두려웠다. 그래서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 1일 밤이면 잠을 설쳤고, 2일엔 어김없이 배가 아팠다.



여행 을 떠나는 날은 나에게 늘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 2일 같다. 전날 밤은 잠을 설치고, 비행기 에 오르면 배가 사르르 아프다. 낯선 하굑에 갈 두려움 때문에 잠을 설쳤다면, 이젠 낯선 곳에서 펼쳐질 일들에 대한 기대감에 잠을 설친다.


아침이면 학교가 가기 싫어서 배가 사르르 아팠다면, 지금은 한국을 떠나기 전 한식을 양보다 많이 구겨 넣어 간직하려다 보니 배가 아픈 것이다.


날씨, 언어, 음식은 물론 하다 못해 버스 승하차 문 열리는 방향 까지도 다른 곳으로의 여행. 이 낯선 존재들의 집약체인 여행 이라는 것을 완연하게 즐기게 된 건 30대가 훌쩍 넘어서다.



물론 20대의 나도 여행 을 가긴 했다. 하지만 즐겼다기보다 해내야 하는 일종의 미션 같았다. 남들도 가니깐... 모두들 여행 에서 뭔가 인생의 답을 찾았다고 말하니까... 나도 그걸 찾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무작정 떠났다. 남들 따라 !!



20대의 여행엔 있지만, 30대의 여행 엔 없는 3가지 : 체력, 취향, 다음



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나은 건 딱 하나 ! 오직 체력뿐이다. 어떻게 보면 인간의 시계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하루하루 죽는 날을 향해 빛의 속도로 달려간다. 그런 면에서 30대의 나에 비해 20대의 내가 내세울 거라곤 체력밖에 없다. 아침 8시에 숙소에서 나와 밤 11시까지 쏘다니고 다녀도 밤에 피로회복제 같은 맥주 한 캔 하고 자면 다음 날 아침엔 다시 에너지가 풀 충전이 된다.



하지만,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 ! 행여 무리해서 밤샘 이동을 한다면 다음 날 무조건 풀로 쉬어야 한다. 20대 때는 캐리어에 옷이 종류별로 있었지만, 30대의 캐리어엔 종류별로 비상약과 영양제가 있다.


옷이야 현지에서 대충 사도 되지만 내 몸에 맞는 약을 말도 안 통하는 현지에서 구하는 게 쉽지 않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. (30대에 비해) 에너지가 차고 넘치니 모든 걸 몸므로 부딪혀 체득한다.



금전 사정이 넉넉하지 않으니 교통비 비싼 나라에서는 시내버스 2~3 정거장 걷는 것은 기본이고, 돈만 내면 케이블카로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전망대도 튼튼한 두다리를 이용해 올가갈 수 있을 만큼 올라간다. 부족한 체력, 늘어난 귀차니즘을 비용과 바꾼다.


어릴 때는 패기의 배짱이 두둑하면 되고, 나이가 들수록 지갑이 두둑해야 한다.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오면 보다 적극적으로 소득 활동에 매진한다. 다음 번의 더 여유로운 여행을 위하여.


20대의 시절 여행을 떠나 매일 아침 부지런히 밖을 나섰던 이유는 가야할 곳, 봐야 할 것, 먹어야 할 것, 해야 할 것 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. 가이드북이 여행의 바이블인 양 여행 내내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. 가이드북 느님이 인도하시는 그 곳을 지나치는 것이 큰 죄를 저지른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.



지금이야 일본 가서 초밥 좀 안 먹고 오면 어떻고, 코타키나발루에서 가서 호핑 투어를 안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. 하지만 20대 때 까지만 해도 그건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다. 


남들 다 간다니까 시간을 쪼개가며 유명한 박물관이며 미술관, 성당에 발도장을 찍었다. 하지만 수천 수백 년 전 과거의 유물들을 보는 것 보다 거리, 시장, 공원, 카페에서 지금의 그 곳을 사는 생생한 표정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.


그게 바로 내 취향이다.



늘 빠듯했던 20대엔 없는 시간과 돈을 꾸역꾸역 쪼개 떠난 여행이다 보니 "다음" 을 기약한다는 건 상상ㅎ알 수가 없었다. 여기 또 언제 오겠냐 싶은 마음 때문이다. 그래서 체력도, 돈도, 시간도 바닥까지 긁어모아 알뜰히 썼다. 미련도 후회도 아쉬움도 남지 않아야 하는 게 내 여행 의 목표였다.


한마디로 말해 그 여행지 의 끝장을 봐야 했다. 첫 유럽 여행 중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보지 않으면 내 인생에 다시는 에펠탑이 없을 줄 알았다. 일정이 빠듯해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, 불법 체류자들읠 노점상들도 철수한 야심한 시각에 도착해 인증샷만 찍고 취객과 부랑자가 널브러진 지하철 막차를 타기 위해 전력 질주해야 했다.


내 인생의 아프리카는 세네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다. 하지만 세네갈의 경험은 탄자니아로, 마다가스카르로 이어졌고, 나는 다시 아프리카 땅을 밟을 수 있었다. 30대가 된 지금은 일부러라도 여지를 남겨둔다. 그래야 다음에 그 곳에 또 가야 할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.



20대에 다양한 경험을 쌓고, 30대에 취향을 만들면, 40대의 나는 또 어떤 여행 을 하게 될까?



원문 : 호사의 브런치